경기 꺾이는데 한은 금리 왜 올렸나…가계부채·미 금리인상

"성장률 전망 낮췄지만 잠재 수준 큰 차이 없어" 금융안정에 무게
가계부채 증가세 여전히 빠르고 한미금리차도 부담…'실기론' 지적도
 경기가 안 좋고 물가상승률이 높지도 않은데 한국은행은 금리를 왜 올렸을까.
한은은 30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연 1.50→1.75%)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통상 중앙은행은 경기가 과열되지 않도록 잔치에서 술을 치우는 역할을 하는데 지금 한은은 경기가 식는 국면에서 금리인상 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그 배경에는 금융안정을 우선할 때라는 판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주열 총재는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외 리스크 요인이 성장, 물가 등 거시 경제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금융 불균형을 완화하고 정책 여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은이 1년 전 금리방향을 틀었지만 여전히 금리가 사상 최저에 가까운 수준이다 보니 저금리 부작용이 누적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대표적인 문제가 1천5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다. 이 총재는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줄고 있지만 여전히 소득보다 빠른 속도로 는다고 우려했다.
올해 중반 부동산 시장 폭등도 관련이 있다. 한은은 가계대출과 부동산 가격이 상호 영향을 준다고 분석했다.
미국 금리인상도 압박요인이다. 한미 정책금리는 올해 3월 역전됐으며, 한은이 이번에도 금리를 움직이지 않았다면 12월엔 역전 폭이 1%포인트로 커질 공산이 크다.
한미 금리역전이 대규모 자금 유출을 초래하진 않았다. 하지만 위기시엔 충격을 키운다는 불안감이 고조된다.
이 총재도 지난달 금통위 후 간담회에서 미 금리인상을 두고 "국제금융시장과 투자 형태에 영향을 줘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국내 금융시장도 그 영향을 받을 수 있기에 늘 유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금리인상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는 "한은 목표 중에 금융안정이 있는데 그와 관련해 가계부채나 자본유출 우려 등 금리를 인상할 이유가 많다"며 "경기가 안좋으면 부담이 가긴 하지만 지금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니고 금융안정은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반면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가 그렇게 좋지 않아서 인상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가계부채 증가세는 누그러들었고 부동산 시장 분위기도 달라졌는데 경기는 금리인상을 받쳐주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최근 한국 경제는 안으로는 활력이 떨어지고 밖으로는 불확실성이 크다.
수요 측면 물가상승 압력이 약하고 일자리 사정은 싸늘하다. 새로운 성장 동력이 부각되지 않는데 반도체 수출 주도 성장세가 계속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미중 무역분쟁과 신흥국 금융불안이 어떻게 전개되며 어떤 영향을 줄지 다들 조마조마하며 지켜보고 있다.

일부에선 한은이 실기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경기 여건이 그나마 낫던 상반기에 올려놨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가계와 기업이 금리인상 충격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대출규제도 훨씬 강화된 상태여서 가뜩이나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운 서민들이 느끼는 고통이 배가될 수 있다.
3%대 성장세에 힘입어 이견이 거의 없던 지난해 금리인상 때와는 다른 상황이다.
한은도 성장 눈높이를 낮추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연초 3.0%로 봤다가 지난달엔 2.7%까지 내렸다. 내년에도 2.7%다. 이는 잠재성장률(2.8∼2.9%) 보다 낮다.
한은은 다만 잠재성장률과 큰 차이가 나지 않은 수준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경기 진폭도 크지 않다고 전망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1일 발간한 한국경제전망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를 하회하고 있어 통화정책 정상화는 점진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으며, 금융안정 관련 잠재 리스크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코픽스 3년새 최고…대출금리 뛰면 빚갚기 힘든 가구 증가 불가피
한국은행이 올해 첫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시중금리와 수신금리가 따라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대출금리 상승도 시간문제다.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기준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3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30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10월 기준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와 잔액 기준 코픽스가 각각 1.93%로 집계됐다.
신규취급액 기준으로는 2015년 2월(2.03%) 이래 최고 기록이며, 잔액 기준으로도 2015년 10월(1.93%) 이후 가장 높다.
코픽스는 수신상품 금리 등 조달비용을 바탕으로 산출하며 추후 변동금리의 기준이 된다.
지난 1년간 기준금리가 동결된 와중에도 코픽스는 슬금슬금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기준금리 인상을 계기로 코픽스가 한 단계 점프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11월에도 기준금리 인상 후 일주일 만에 5대 시중은행이 줄줄이 예·적금 금리를 0.2∼0.3%포인트(p)씩 인상한 바 있다. 이 같은 수신상품 금리 인상은 코픽스 상승을 부른다.
현재 KB국민은행의 잔액기준 코픽스 연동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는 최고 4.80%까지 올랐다. 연초부터 우려했던 대출금리 5% 시나리오에 바짝 다가선 모습이다.
5년 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융채 AAA등급 5년물 금리(민평평균 기준)는 주춤하는 모양새지만 여전히 변수가 많다.
금융채 5년물 금리는 29일 기준 2.181%로 집계됐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기준금리가 중립 금리 바로 아래에 있다는 발언을 하면서 미국이 금리 인상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미국 경제에 대한 연준의 시각이 수정된 것은 아니라서 이 같은 시장 반응이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한계 차주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월 기준으로 빚 갚는 데 어려움이 있는 고위험가구는 34만6천가구로, 전체 부채 가구의 3.1%를 차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출금리가 1%포인트 상승할 경우 고위험가구의 비중은 3.5%로 늘어난다. 수치로 환산하면 약 39만 가구가 고위험가구에 해당하게 되는 것이다.
대출금리가 2%포인트 오르면 고위험가구 비중은 4.2%로 증가한다.
고위험가구는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DSR)이 40%를 초과하고 자산평가액 대비 총부채(DTA)가 100%를 넘는 가구를 뜻한다.
금리 인상이 내년과 내후년에도 이어진다면 이 같은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서병호 금융연구원 가계부채연구센터장은 "이번 기준금리 인상은 소폭이고 대출금리와 바로 연동되는 것도 아니라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앞으로 금리 상승 추세로 가면 한계차주 위주로 부실화 우려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계부채 증가·한미금리차 확대 등으로 금융안정에 무게
경기 하강국면은 부담…다음 인상시기는 불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