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바꾸는 문장의 온도

요즘 책과 담 쌓은 사람. 올해가 가기 전 한 권이라도 읽고 싶은 사람.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뻔한 자기계발서에 지친 사람. 뭔가 색다른 책 보고 싶은 사람. 책을 통해 위로 받고 싶은 사람.

출퇴근길 대중교통 안에서, 점심 식사 후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면서, 잠들기 전 침대 속에서 읽어보세요.

아, 왼쪽에 있는 북마크를 눌러놓으면 나중에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문장의 온도요? 
우리 이기주 작가님이 쓰신 '언어의 온도' 
아류작 인가요?

책 제목을 듣자마자 나온 지인의 반응이예요.
아류라니요. 조선 최고의 에세이스트 아정 이덕무 선생이 들으면 몹시 언짢아 하실 말이라고요.
이덕무.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일 겁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로, 정조 시대에 활약했죠. 혹시나 생소하다고 느낄 분들을 위해 간략한 설명을 곁들일게요.

이덕무(1741~1793)는 누구 

호는 아정(雅亭) 
북학파 실학자 
조선 최고 문장가이자 독서가 
박지원, 유득공, 박제가와 교류 
규장각 초대 검서관으로 활약 
무사 백동수가 이덕무 처남 
호리호리한 큰 키에 단아한 모습으로 알려짐

『문장의 온도』는 이덕무 선생의 소품문 에세이를 모아 엮은 책입니다.
소박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그의 문장에 고전연구가 한정주씨가 해석을 곁들였죠.
이 책에 담긴 이덕무의 문장이 특별한 건 그 안에 특별하지 않은 것들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창하고 심오한 이야기가 아닌 우리 주변의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얘기하죠.
보잘것없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누구나 살다보면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남들은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을 때. 또는 사람으로부터 상처받아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바로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일상입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오랫동안 전해 오던 사소함' 같은 것 말이죠.
지금 당신에게 이런 소소함, 사소함이 필요하진 않나요. 그렇다면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에 담긴 이덕무만의 위로 속으로 들어가 보길 추천 드립니다.
(*조금은 무뚝뚝하게 들리는 이덕무의 위로에 한정주씨의 다정한 해석을 보탰으니 함께 읽어보시면 좋아요.)

위로 1. 그리듯 바라보는 일상
<푸른 봉우리와 흰 구름의 맛>
빼어나게 우뚝 솟은 푸른 봉우리와 싱싱하고 산뜻한 하얀 구름의 아름답고 탐스러운 모양을 오랫동안 부러워하다가 한 손으로 잡아당겨서 모두 먹으려는 마음을 품었다. 그러자 양 볼과 어금니 사이에서 이미 군침을 흘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하에 이보다 더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
『선귤당농소』
글에 소리와 색깔과 모양과 감정이 있는 것처럼 맛도 있다면 반드시 이 글과 같을 것이다
(한정주)
<사계절과 산의 풍경들>
봄 산은 신선하고 산뜻하다.
여름 산은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진다.
가을 산은 여위어 수척하다.
겨울 산은 차갑고 싸늘하다.
『선귤당농소』
글에 소리와 색깔, 감정과 경계가 있다면 마땅히 이러하리라.
(한정주)

위로 2. 오직 내 눈에 예쁜 무언가
<말똥구리와 여의주>
말똥구리는 스스로 말똥 굴리기를 좋아할 뿐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또한 여의주를 자랑하거나 뽐내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선귤당농소』
사람의 시각이 아닌 하늘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주 만물의 가치는 모두 균등하다. 단지 차이와 다양성이 존재할 뿐이다.
(한정주)
<백마의 깨달음>
천리마의 한 오라기 털이 하얗다고 해서 미리 그 천리마가 백마라고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온몸에 있는 천만 개의 털 중에서 누런 털도 있고 검은 털도 있을지 어찌 알겠는가. 이러한 이치로 보건대, 어찌 사람의 한 가지 면만을 보고 그의 모든 것을 판단하겠는가.
『이목구심서 4』
일반화의 오류란 부분을 갖고 전체인 양 착각하는 잘못을 말한다. 사물의 일부나 단면을 두고서 모든 것이 그렇다고 지레 짐작하기 때문이다.
(한정주)

위로 3. 마음이 밖으로 드러나는 곳

<소나무에는 매미가 없다?>
누가 소나무와 회나무는 굳센 기운을 지녀서 매미가 깃들지 않는다고 말했는가? 나는 일찍이 여름밤 만 그루의 소나무와 회나무가 우거진 숲속 곳곳에서 매미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목구심서 1』
사람들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이는 곧 보는 것이 아는 것에 지배당한다는 뜻이다. 사물의 실체가 아니라 자신이 아는 대로만 사물을 본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 의문을 갖고 모든 것을 시험해보라. 자명하고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한정주)
<포식과 소식>
나는 일찍이 배가 부르게 음식을 먹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혼탁하게 해 독서에 크게 이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손님이 "소년들을 많이 살펴보았는데, 밥을 많이 먹는 자는 반드시 요절했다"고 말했다. 지금 '박물지'를 펼쳐 보았다. 그곳에는 "적게 먹으면 먹을수록 마음이 열리고 더욱 맑아진다. 많이 먹으면 먹을수록 마음이 막히고 수명은 줄어든다"고 적혀 있다. 앞서 내가 말한 것이 징험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목구심서 6』 

의학을 도움을 빌지 않더라도 과식하면 집중력이 흐트러져 독서가 어려워지는 것은 자연스레 깨달을 수 있다. 논리적 사유와 분석이 아닌 직관과 징험의 방법을 통해서도 세상 만물의 이치를 깨칠 수 있다.
(한정주)

이덕무의 글은 우아하고 훌륭하다. 
그의 재주와 식견을 잊을 수 없다

위로 4. 세상에 얽매이지 않는 삶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겁다>
아무 일이 없을 때에도 지극한 즐거움이 있다. 다만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훗날 반드시 문득 깨치는 날이 있다면, 바로 근심하고 걱정하는 때일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어느 관청의 수령이 평온하고 조용한 성품을 갖춰서 이렇다 할 일을 하지 않아 백성들에게 베푼 혜택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 후임으로 온 수령이 몹시 사납고 잔혹했다. 그때서야 백성들은 비로소 예전 수령을 한없이 생각하며 그리워했다.
『이목구심서 2』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익과 명예와 권세와 출세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다.
(한정주)
<이기는 것을 좋아하면 천적을 만난다>
편의에 안주하는 사람은 큰 고비를 만나면 어찌할 줄 모른다. 자신이 해오던 대로만 하는 사람은 큰 기회가 와도 붙들지 못한다. 임시방편으로 그때그때를 넘기는 사람은 큰 근심거리를 만나게 마련이다. 남에게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큰 적수를 만나게 된다. 일의 형세가 그렇다.
『이목구심서 2』
편안하면서도 안일하지 않고, 옛것에 머물면서도 혁신할 줄 알고, 임시방편에 능숙하면서도 일의 질서를 잃지 않고, 이기려고 하면서도 패배를 용납할 줄 안다면 그야말로 고상한 인덕의 소유자라 할 만하다.
(한정주)
위로 5. 동심으로 바라본 세상
<어린아이의 눈동자>
어린아이의 모공과 뼈마디는 모두 어른만 못하다. 그러나 유독 눈동자만은 더하거나 덜하지 않다. 어린아이의 눈동자를 보라. 바로 크게 기이한 조짐이다.
『이목구심서 2』
어린아이의 눈동자가 왜 크게 기이한 조짐인가?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가득 찬 맑은 눈동자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정주)

<뜻대로 되는 일과 되지 않는 일>
일이 내 뜻대로 되어도 단지 그렇게 보낼 뿐이다.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역시 그렇게 보낼 뿐이다.
그러나 언짢게 보내는 일과 기분 좋게 보내는 일이 있다.
『선귤당농소』
자신 뜻과 의지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라.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일의 성공과 실패에는 운이 훨씬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진정한 능력은 이 운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한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