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한 천막이 잠실종합운동장 한복판에 떡하니 세워진다. 막을 걷고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마법이 펼쳐진다. 부채꼴 무대 위 끝이 보이지 않는 정중앙의 화려한 탑. 그 주변에서 관객을 맞는 형형색색의 옷을 차려입은 광대들.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가 된 느낌이랄까.
캐나다를 대표하는 서커스 단체 '태양의서커스(CIRQUE DU SOLEIL)'의 15번째 작품 '쿠자(KOOZA)'가 한국에서 초연된다. 현존하는 빅톱(움직이는 마을이라 불리는, 공연을 위해 설치되는 서커스 무대) 공연 중 가장 크고 화려한 작품. 아티스트 총 50명이 무대에 올라 인간의 몸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곡예와 예술의 경지에 이른 무용을 보여준다.
아티스트 세 명이 맨몸으로 보여주는 '컨토션'. 뒤틀림이라는 뜻의 컨토션은 극한의 유연성으로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아름다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컨토션이 유연성의 극한이라면 '밸런싱 온 체어'는 균형잡기의 최고 기술이다. 의자 8개를 쌓아 7m의 타워를 만들고 그 위에서 믿을 수 없이 위험한 동작들을 펼쳐낸다. 7.6m 상공에서 이뤄지는 '하이 와이어'도 놓쳐서는 안된다. 남성 아티스트 네 명이 4.5m 길이 두 개의 줄을 타는데, 3000㎏의 중력을 이겨내고 그 위에서 뛰고 자전거를 타며 고난이도 균형잡기를 보여준다.
아트서커스를 지향하는 태양의 서커스답게 쿠자 역시 기교뿐만 아니라 탄탄한 이야기 구조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작품은 울적한 외톨이 '이노센트(Innocent)'가 장난감 상자 뚜껑을 열자 '트릭스터(Trickster)'가 깜짝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트릭스터의 인도 아래 이노센트는 쿠자의 세계에 가게 되고 천재적이고 매력적인 트릭스터, 사람들의 존경심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리석은 왕 '킹', 통제 불가능하지만 귀여운 강아지 '매드독' 등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게 된다. 매일경제가 '쿠자'의 예술감독 딘 하비를 서면으로 만났다.
-당신이 생각하는 쿠자의 매력에 대해 알려달라.
▷쿠자는 원래 태양의 서커스의 기원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그야말로 고난도 곡예와 광대 연기에 충실한 공연이죠. 세계적인 광대이자 공연 제작자인 데이비드 샤이너는 이 두 가지를 꼭 공연에 담고자 했습니다. 그런 만큼 서커스의 '재미'가 확실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 이야기의 특별한 점은 바로 공감대라고 생각합니다. '쿠자'(고대 산스크리트어로 '상자'를 뜻한다)는 이노센트라는 인물의 여행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의 여행길을 걷고 있죠. 이노센트라는 인물과 그의 여정, 그가 그 과정에서 다른 인물들과 맺는 관계는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관객들이 쿠자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다면.
▷저는 관객분들이 공연의 특정 한 부분만 경험하길 원치 않습니다. 전체적인 경험이 중요합니다. 저희 공연장 입구의 아치에 들어온 순간부터 공연이 끝날 때까지 모든 것을 감상하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해요. 한 부분이 아니라 모든 걸 보고 가시길 바랍니다.
-사실 태양의 서커스의 트레이드마크는 움직이는 마을 '빅톱'이다. 하지만 빅톱은 굉장히 비용이 많이 드는 형식이다. 그럼에도 '움직이는 마을' 시스템을 가지고 투어를 하게 된 유래와 이처럼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드는 시스템을 고수하는 이유는. 또 이 방식의 어려움과 장점은 무엇인가.
▷태양의 서커스는 다양한 유형의 시장 요구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제작해 왔습니다. 라스베이거스와 상하이에서는 공연장 안에서 상설 무대를 펼치고 있고요. 그중에서도 빅톱 공연은 저희에게 세계적 명성을 가져다 준 진정한 태양의 서커스를 체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60도 부채꼴 모양의 무대 덕분에 아티스트들과 근접성이 뛰어나고 관객 약 2500명이 텐트 안에서 만들어내는 흥미진진한 분위기는 서커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빅톱에 들어서는 순간부터가 무대의 시작이고, 또 빅톱 자체도 하나의 서커스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용이 많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빅톱 무대를 위해서 저희는 150명에서 180명 사이의 현지 인원을 고용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빅톱 아래에서 상연되는 투어 공연은 해당 지역 내 인구수와 공연 장소의 접근성, 가시성, 거대한 텐트 및 '움직이는 마을'의 수용 가능성에 따라 방문할 도시가 정해집니다.
-태양의 서커스의 화려한 무대 의상 역시 매력적인데 그중에서도 유독 매드독 의상이 눈길을 끈다(강아지 탈을 뒤집어쓰는데 침도 흘리고, 꼬리도 흔들며, 오줌도 싼다). 매드독 의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매드독 의상 배 쪽에는 전자 장치 2개가 있습니다. 그 장치들이 하나의 망 같은 것 안에 모여 있죠. 오줌 효과를 위한 물은 커다란 물병에 담겨 있는데, 손 쪽에 버튼 2개짜리 수동 조작기와 연결돼 있습니다. 한 버튼은 물병과 마치 수조 펌프처럼 연결되어 있고, 나머지 케이블 하나는 머리와 연결돼 있습니다. 머리 뒤쪽에 커다란 솔레노이드(원통 코일)가 박혀 있어 버튼을 누르면 귀가 위아래로 움직이는 방식입니다.
-다른 서커스 단체들과 차별되는 태양의 서커스만의 매력은.
▷태양의 서커스는 매우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입니다. 30년보다 더 전에 거리 공연자들이 서커스 예술을 재창조하고, 동물이 등장하지 않는 곡예 중심의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만들기 위해 모여서 시작한, 굉장히 감정적이고 눈을 뗄 수 없는 엔터테인먼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저희는 새로운 기술과 공연 형식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공연에 융합시키는 방법을 추구함으로써 선구자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절대로 과거의 영광 위에 안주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 저희의 비법입니다. 태양의 서커스 모토는 하나입니다. "불가능이란 단어에 불과하다."
1980년대 초 거리 예술가 20명이 모여 시작한 태양의 서커스는 지난 30여 년 동안 세계 6대륙 60개국, 450여 개 도시에서 1억9000만명 이상의 관객과 만나며 세계적 명성을 쌓아왔다. 연 매출 8억5000만달러, 연간 티켓 판매 550만장 규모에 달해, 문화예술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꼽힌다.
공연은 11월 3일부터 12월 30일까지 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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