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표 뽑아야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가게

샌드위치 좋아하는 사람,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람, 내년 여름 휴가 계획 짜는 사람, 가끔 동화같은 풍경을 만끽하고 싶은 사람.
<사랑받는 가게의 비밀 3가지>

보르데리(Caseificio Borderi). 시장통 작은 치즈 가게. 이탈리아 남단에 있는 섬 '시칠리아'. 거기서도 작은 도시인 시라큐사(Siracusa)에 있는 작은 치즈가게는 늘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로 붐빈다. 몇십미터씩 줄을 서고, 이탈리아식 샌드위치 '파니니' 하나를 받기 위해 30분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최근에는 줄이 너무 길어 번호표가 생겼다고 한다.

그렇게 말린 토마토, 생토마토, 각종 채소, 치즈 3~4종류, 햄 2~3종류를 차곡 차곡 쌓으면 거대한 샌드위치가 완성된다. 틈틈이 뿌린 올리브오일과 레몬즙은 이탈리아 (그리고 시칠리아)의 상징 같다. 길이 30㎝쯤 되는 바게뜨는 토핑을 넣기 위해 속을 파냈지만 토핑을 넣고 나니 높이 5~6㎝가 넘는다. 가격은 6유로(약 7500원).

여행정보를 나누는 '트립 어드바이저(Trip Advisor)에 올라온 4000개 넘는 후기에 딸린 평점도 대부분 5점 만점이다. 가끔 "너무 기다려야 한다" "(양이 많아서) 배 부를 땐 가면 안된다" 라는 불만이 올라오긴 하지만. 대체 매력이 뭘까?

비밀은 세 가지. 일단 궁금하면 영상을 보자! 샌드위치 하나를 만드는데 무려 8분 46초가 걸린다. 빵을 여러 개 펼쳐두고 속을 채운다. 그러다 갑자기 치즈를 잘라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손님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지나가던 이웃과 수다를 떤다. 샌드위치를 만들다 말고 손님과 사진을 찍기도 한다. 여기에 모든 영업비밀이 담겨 있다.

①좋은 재료를 쓴다

가게 이름 Caseificio Borderi는 이탈리아어로 '보르데리 가족의 치즈공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1930년 돈 파스칼레 보르데리가 올리브 오일 생산으로 창업했다. 이후 치즈 등 유제품으로 확장했다.1970년대 아들 안드레아 보르데리씨가 본격적으로 치즈를 만들면서 유명해졌다. 영상 속 할아버지가 안드레아 보르데리다.

이 집에서 파는 모든 치즈는 다 직접 만든다. 시칠리아 전통 방식을 써서 한 번에 정해진 양만 만든다. 단지 전통만 지키려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치즈를 찾기 위해 끝없이 연구한다.

치즈에 와인이나 채소를 넣어보기도 하고, 모짜렐라 치즈를 구워보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해본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지나면서 보르데리를 찾는 손님들이 '신선하고 가벼운 치즈를 선호한다'라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개발한 게 모짜렐라치즈에 채소를 넣은 제품이라고.


② 기다리는 것도 액티비티다

샌드위치를 받아들기까지 최소 30분. 샌드위치 하나 받자고 30분 넘게 줄을 서다니. 하지만 그 30분 동안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기다리는 시간 기분이 나쁘거나 짜증나지 않는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이유는 "내가 그 삶 속의 한 장면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눈이 즐겁다. 유쾌하게 일하는 사람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다. 끊임없이 권하는 치즈 덕에 혀는 즐겁다. 심지어 공짜!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액티비티가 되는 셈이다.

보르데리씨가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카메라를 들어 가볍게 사진 찍는 것만으로도, 기다리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보르데리에서 파는 것은 단지 치즈와 샌드위치 만이 아니다. 이들은 '건강한 음식을 여유있게 즐기는 생활 방식'을 전하고 싶어한다.

③ 직원들이 신나게 일한다

흥이 넘치는 건 안드레아씨만이 아니다. 가게 점원 모두가 열심히, 즐겁게 일한다. 그들은 각자 줄을 서 있는 모든 고객에게 말을 건다. 갓 만든 따끈한 치즈가 나오면 무료로 뚝뚝 떼서 나눠준다.

관광객들이 쭈뼛 쭈뼛 카메라를 들면 '짠~'하고 포즈를 취해준다. 손님에게 국적을 물어보고 그 나라 말을 하거나,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도 있다. 뭐가 됐건 "이 순간만큼은 너와 내가 평생 본 것 같이 교감한다"라는 느낌을 준다.

이들을 보면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과 즐거움을 준다는 게 이들이 세상에 전하고 싶은 가치일 것이다. 물론 가족과 일하며 겪는 어려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도 있겠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올린 후기를 보니 요즘은 안드레아씨가 안 보일 때도 있다고 한다. 샌드위치를 만들려면 항상 서 있어야 한다. 이미 70대를 넘겼으니 체력소모가 큰 샌드위치보다는 치즈를 만드는 데 더 시간을 쓰는 모양이다.

재료가 부족하거나 정성이 덜하지 않겠지만 보르데리의 상징인 안드레아씨가 없으니 서운하다는 손님들도 있다. 여행 중 한 번만 들리는 사람도, 근처에 살며 항상 찾는 단골도 모두 보르데리의 팬이 된다. 사랑받는 가게의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