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키 창업자가 청년들에게 꼭 권하는 것

한 달에 두 번 QUE와 함께 책 읽으실래요? 왼쪽에 있는 북마크를 눌러놓으면 나중에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침대에 누워서, 출퇴근길 대중교통 안에서, 점심 식사 후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면서 읽어보세요. 첫 번째 [북앤큐 Book and Que]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가 쓴 '슈독'입니다.


※ 슈독(Shoe Dog)은 신발의 제조, 판매, 구매, 디자인에 전념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신발에 일생을 건 사람들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두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 표현을 쓴다고 하네요. 자신이 하는 일 뒤에 '독(Dog)'을 붙일 수 있다면 꽤 성공한 인생 아닐까요?

나이키. 브랜드 가치 320억달러(약 36조원)인 회사. 늘 세계 1등 브랜드였기에 오히려 누가, 언제, 어떻게 창업했는지 관심 없었습니다. 나이키를 찬양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해를 못했죠.

나이키하면 그저 제 머릿속에는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의 운동화' '힙한 사람들이 즐긴다는 마라톤 대회 나이키 시티레이스' '저개발국 공장의 저임금 노동 논란' 같은 파편적인 정보만 떠돌아다녔는데요.
슈독을 읽고 생각이 완전 바뀌었습니다. 나이키라는 브랜드에 관심이 생겼고, 나이키러닝클럽(NRC) 앱도 깔았습니다. 책을 읽고 난 직후에는 나이키가 주최하는 도심 마라톤 대회에 참여할 기세였죠. (물론 그 의지는 금방 꺾'었'습니다.)

슈독은 성공에 대한 포장된 신화가 아닌 가장 정직한 이야기. 실패와 좌절, 혼란을 솔직히 고백한 이 책은 진짜 성공기이다. (빌 게이츠)

책은 두껍습니다. 두께가 3㎝쯤 됩니다. 작년에 사두고 엄두가 안나 10개월을 묵혔습니다. 하지만 첫 장을 펼친 후 이틀 만에 후루룩 읽었습니다. 창업자 필 나이트가 직접 쓴 나이키 이야기. '나 이렇게 성공했소'라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1962년 창업부터 주식공모를 하기 직전인 1980년까지만 담았는데요. 정말로 '찌질하게' 시작해 '좌충우돌'하던 시절이 펼쳐졌습니다. 거래하던 신발공급업체에 배신 당했고,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지 않았고, 정부로부터 거액의 세금을 추징당할 뻔 하기도 했죠.
개인 재산만 250억달러(약 28조원). 매년 1억달러(약 1120억원)씩 기부하는 필 나이트는 왜 78세에 자서전을 냈을까요? 책 속에서 단서를 찾았습니다.

"나는 잘못된 판단을 수백 아니 수천 번 했다...심각하게 유감스러운 것도 많다...그렇지만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없기 때문에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대신, 나의 경험과 인생 역정을 많은 젊은이들과 나누고 싶다.
그리하여 그들이 시련을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와 위로가 되고 싶고, 때로는 충고가 되고 싶다. 젊은 기업가뿐만 아니라 운동 선수, 화가, 소설가에게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꿈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돕는 것은 보람찬 일이다. 나는 그들에게 하던 일을 멈추고 앞으로 40년 동안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지, 누구하고 함께 쓰고 싶은지 깊이 고민해보라는 말을 하고 싶다.
20대 중반의 젊은이들에게는 직업에 안주하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천직을 찾아라.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더라도, 계속 찾도록 노력하라. 천직을 찾으면 힘든 일도 참을 수 있고, 낙심하더라도 금방 떨쳐버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성공에 이르면 지금까지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 나이트)
웬 꼰대스러운 이야기냐고요? 책 속의 그는 잘난 척 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도 솔직합니다. 이 책은 경영서적이라기 보다는 인생 이야기였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했고, 일을 함께 해나갈 사람을 만났고, 아내를 만났고, 아이들이 태어났고,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어려움에 (자주) 처했고, 어떻게든 이겨냈고, 때로는 실수를 했고, 누군가는 먼저 세상을 떠났고, 함께 꿈을 꿨던 누군가와는 안 좋게 헤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책은 동틀 녘이라는 프롤로그로 시작해 해질 녘이라는 에필로그로 끝납니다. 해질 녘에는 책에 등장한 인물의 현재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나이키의 탄생부터 성장을 함께했기 때문일까요? 마지막 해질 녘 부분을 읽다보면 눈물이 핑 돌더군요.
제가 감동한 다섯 가지 이야기를 골랐습니다.

① 시작은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었다

필 나이트는 육상선수였다. 고향인 오리건대학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선수로 대성할 수준은 아니었기에 대학 졸업 후 스탠퍼드 경영대학원에 간다. 선수 생활은 접었지만 그는 스포츠와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기 직전의 숨 가쁜 순간에 느끼는 명료함이 자신의 삶이자 일상이 되길 바랐다.

1960년대 초 독일이 독점했던 카메라 시장에서 일본 제품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육상선수 출신이었던 필 나이트는 "앞으로 러닝화 시장도 일본이 장악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 일본으로 갔다. 제2차 세계대전의 공포가 채 가시지 않았던 때였다. 고베에 있던 아식스의 전신인 오니쓰카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오니쓰카가 만든 운동화 '타이거'를 미국에 수입하기로 했다. 스스로 만든 회사도, 소속된 회사도 없을 때였다. 계약을 따내기 위해 '블루리본'이라는 회사가 있다고 거짓말한 셈이다. 1962년이었다. 나이키라고 이름을 바꾼 건 1971년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단순히 제품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② 초기 멤버는 '고용 부적격자'였다

바우어만 드라이브를 타고 델 헤이즈 웨이가 나올 때까지 계속 가시면 됩니다.

나이키 본사(캠퍼스)를 찾는 방문객은 모두 이 안내를 듣는다고 한다. 빌 바우어만은 육상코치이자 나이키 공동창업자다. 그는 괴팍했다. 대신 육상에 미친 사람이었다. 집에서도 운동화에 매달렸다. 폐타이어와 각종 화학제품을 섞어 러닝화에 적합한 소재를 찾았다.

이 과정에서 화학약품에 노출돼 항상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고 시력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머릿 속에는 운동화 생각 밖에 없었다.
필 나이트가 회계회사에 다닐 때 만난 선임 델 헤이즈. 숫자에 비상했지만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못했다. 너무 뚱뚱하고 온갖 공포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키가 자리 잡기 전 합류해 재무와 회계를 담당했다.
필 나이트의 여동생을 제외하고 나이키의 첫 번째 정규직원이었던 제프 존슨은 열정적이었다. 달리기와 운동화에 미쳐 있었다. 그는 일주일에 7일 일했다. 또 집요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객 카드를 만들어 고객과 수시로 연락했다. 필 나이트에게 하루에 한 통씩 편지를 쓰기도 했다. 나이키가 미국 여러 지역에 진출할 때마다 근무지를 옮겨다니며 기반을 닦았다.

바우어만 코치 소개로 들어온 보브 우델은 촉망받던 육상스타였다. 사고로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된 후 나이키에 합류했다. 필 나이트는 우델이 항상 휠체어에 타고 있어 그가 신은 나이키 운동화는 깨끗했다고 말했다. 우델은 장애가 있었지만 긍정적이고 안정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나이키를 성장시켰다. 나이키에서 퇴임한 후 포틀랜드 강과 공항을 관리하는 기관의 수장이 됐다.


③ 나이키 로고는 고작 35달러짜리였다

나이키라는 이름은 1971년 탄생했다. 나이키라는 회사도 그때 만들어졌다. 그 전까지 회사 이름은 블루리본이었다. 처음 계약을 맺었던 오니쓰카와 법적 갈등 끝에 결별했고, 자체 브랜드를 만들었다. 만장일치로 '나이키'라는 이름이 결정된 게 아니었다. 원래 필 니이트가 생각한 이름은 '디멘션식스'. 다른 사람들이 낸 뱅골, 팔콘 같은 이름도 있었다.
회사명을 정하기로 한 마지막날 제프 존슨이 꿈에서 들은 이름이라며 '나이키'를 제시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와 같은 이름이었다. 필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수락했다.

바람 부는 소리에 착안한 로고 '스우시'도 얼떨결에 만들어졌다. 디자이너는 캐롤라인 데이비슨. 필 나이트가 포틀랜드대학에서 잠시 회계학 강사를 할 때 알게 된 디자인 전공 학생이었다. 로고 디자인 비용은 35달러였다. 시급 2달러로 17시간만에 만들었기에 나온 계산이었다. 지금 시세로 환산해도 200달러 (약 20만원) 수준.

완성된 로고를 봤을 때 필 나이트의 반응은 역시 뜨끈미지근 했다. 당장 공장에 로고를 넘겨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지금은 마음에 안 들지만 점점 괜찮아지겠지, 뭐.

나이키가 성공하자 필 나이트는 감사의 표시로 캐롤라인에게 나이키 주식 500주를 줬다. 캐롤라인은 나이키에서 몇 년 간 디자이너로 일했다.

④ 창업 7년이 될때까지 투잡을 뛰었다

무엇인가에 미쳐 살더라도 대안이 필요하다. 필 나이트는 창업하고 7년간 월급을 받지 못했다. 매출은 성장했지만 창업자가 월급을 받을 상황은 아니었다. 투잡을 뛸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 친구의 조언으로 땄던 회계사 자격증이 그를 먹여살렸다. 회계회사에 취업해 받은 월급으로 나이키(당시 블루리본)에 재투자했다. 당시 현금 보유량에 따라 대출을 해주는 관행 때문에 나이키는 은행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돈이 생기면 무조건 투자를 하다보니 현금 보유량이 적었던 탓이다.

회계사로 일하면서 가족 생계를 꾸렸고, 회사에 투자할 자금도 벌었다. 무엇보다 나이키의 핵심 인력이었던 델 헤이즈를 만나게 됐다.

필 나이트는 "기업가는 때로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포기할 때를 알고 다른 것을 추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신 "포기가 중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했다. 믿음에 대한 정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이 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⑤ 매일 같은 행동을 하면 도움이 된다

필 나이트는 매일 밤 달리기를 하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저녁 식사 후에는 항상 두 아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줬다. 역사적 사실에 두 아들을 주인공으로 구성한 이야기였다. 그의 '루틴(운동선수들의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이 루틴은 인생 최악의 시기에 만들어졌다. 은행 대출을 못 받던 시절, 일본 회사에 지급할 운동화 대금을 마련하기도 빠듯했고 직원 월급을 못 주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했던 때였다.

그가 하기 싫었던 일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즈음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돈을 빌려달라"고 말했다. 심지어 고교 시절 육상 라이벌 짐 그렐에게도 찾아갔다. 그가 사업을 해 큰 돈을 벌었단 이야길 들었기 때문이었다.

짐 그렐은 투자를 거절했다. 대신 달리기 시합에서 자신을 앞서면 1초당 1달러를 주겠다는 내기를 제안했다. 당시 필은 사업을 하면서 살이 10㎏ 이상 쪄 있었다.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여름 내내 달리기 연습을 했다. 결국 그렐보다 36초 앞섰다. 투자를 받지 못했지만 이 경험이 그에겐 큰 힘이 됐다.

그래, 계속 가는 거야. 중단해선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