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논란 뜨거운 단말기 완전자급제…통신비 거품 사라져 vs 가격 인하 효과 없다

약 5만개.
전국 통신사 대리점 수다. 매일 포화 상태라고 부르짖는 편의점 수(약 4만개)보다 많다. 통신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 대리점 수만 해도 2만2000개다. 한국보다 인구가 약 6배 많은 미국 버라이즌은 약 7400개. 인구가 2.5배 많은 일본 NTT도코모는 5900개다.
국내 이통 3사가 가입자 유치를 위해 유통점에 뿌리는 돈만 1년에 4조원이다. 이 돈이 고스란히 소비자 요금으로 전가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핸드폰 구매와 통신사 가입을 따로 하는 ‘단말기 완전자급제(잠깐용어 참조)’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몇 년 전부터 끊이지를 않았다. 한동안 잠시 주춤했던 완전자급제 도입 논의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또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가계 통신비 인하를 위해 ‘완전자급제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반면 대리점과 판매점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단말기 완전자급제란?
▷휴대폰 구입 따로, 개통 따로
단말기 완전자급제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에서 단말기를 구입한 뒤 소비자가 통신사를 마음대로 골라 통신 서비스에 가입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완전자급제를 시행하면 소비자는 통신 매장에서 요금제만 가입하고 휴대폰은 단말기 판매점 등 다른 유통망에서 구입할 수 있다. 마치 TV는 별도 구매하고 IPTV나 케이블 서비스는 다른 서비스 업체에 가입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사실 완전자급제가 그동안 시행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12년 5월부터 가입자가 제조사에서 단말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갖춰졌다. 다만 통신사에서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유통구조 때문에 전면 활성화되지는 않았다. 완전자급제는 여기서 한 단계 넘어 모든 휴대폰을 구매할 때 별도의 지원금 없이 판매와 개통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대부분 소비자가 이통사 대리점에서 휴대폰을 구입하고 통신 서비스도 함께 가입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한국 통신 소비자의 자급제 비율은 8%에 불과하다. 세계 평균(61%) 대비 현저히 낮다.
완전자급제는 그간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의 대안으로 종종 언급됐다. 2014년 10월 시행된 단통법은 지원금 공시, 요금 할인 등을 골자로 시행됐다. 하지만 불법 보조금 문제를 뿌리 뽑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통신사가 가입자 유치를 위해 사용하는 판매장려금이 소비자 요금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지적도 많았다. 하지만 대리점 반발로 완전자급제 도입 논의는 번번이 무산됐다.
완전자급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오른 것은 국정감사를 시작하면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10월 말 ‘이동통신단말장치와 이동통신서비스의 유통구조 분리 등에 관한 법률(가칭)’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성태 의원은 “통신 서비스와 단말기 판매를 완벽히 분리해 이용자 차별, 불투명한 가격구조, 통신 매장 중심의 유통구조 등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완전자급제 도입 논의에 여야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3년간 10조원에 달하는 판매장려금은 이용자 통신요금으로 전가된다”며 “유통구조 개선과 함께 통신사들의 요금 인하 경쟁을 유도할 수 있도록 단말기 완전자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이통 3사의 마케팅 비용은 약 8조원 규모다. 소비자에게 직접 지원되는 보조금은 약 4조원이며 대리점 리베이트가 3조원, 광고비는 1조원 수준이었다.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도입돼 보조금 개념이 사라진다면 약 7조원의 비용을 감축할 수 있다.
정부 또한 완전자급제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완전자급제가 필요하다”면서도 “도입 시 발생하는 유통망 어려움 등 현실적 문제를 고려해 확실한 내용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리점과 판매점 등 유통사는 즉각 반발에 나섰다. 박선오 SK텔레콤 전국대리점협의회장은 “자급제 논란은 보편요금제 등 요금 인하 압박에서 벗어나려는 통신사의 꼼수”라고 말했다.
▶완전자급제로 통신비 인하?
▷보조금 없어 소비자 혜택 줄 수도
소비자와 시민단체들은 완전자급제 도입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김성태 의원이 밝힌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비자 53%가 완전자급제 도입에 찬성해 반대 의견(11%)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인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3대 이통사가 지난해 단말기 유통시장에 뿌린 불법 초과지원금이 약 1조5917억원”이라며 “유통구조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 완전자급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완전자급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쪽은 이통사 매장이 휴대폰까지 동시에 팔면서 단말기 가격구조가 불투명해져 출고가 경쟁이 일어나지 못한다고 본다. 국내 휴대폰 시장은 삼성, LG, 애플 3사의 단말기 점유율이 90% 이상이다. 소수 제조사 제품만으로 쉽게 가입자를 유치할 수 있는 이통사는 다양한 중소·해외 제조사 제품을 들여오는 데 한계가 있다. 통신과 단말기 판매를 강제로 분리하면 다양한 단말기 유통업체가 생겨 가격 경쟁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다.
다만 완전자급제를 도입해도 통신비 인하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우선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삼성전자 점유율이 60~70%에 이른다. 사실상 독과점이다. 애플 점유율은 20% 안팎이지만 충성도 높은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애플이 아이폰 신제품 가격을 올려도 이들은 대부분 구입한다. 애플이 가격을 올리면 삼성전자도 올리고 LG전자가 따르는 구조다. 사실상 국내 휴대폰 시장을 3사가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완전자급제를 도입해도 출고 가격 인하로 이어질지 물음표가 달리는 배경이다. 단말기 가격이 가장 비싼 애플은 가격 인하에 동참할 가능성이 사실상 제로다. 이미 시장을 장악한 국내 휴대폰 제조사도 마찬가지다. 가격 인하 경쟁에 나서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보조금이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오히려 비싼 돈을 주고 단말기를 구입해야 한다. 이종수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완전자급제가 도입되면 통신비는 감소할 수 있어도 단말기 가격을 강제로 내리기는 어렵다”며 “소비자가 체감하는 통신 비용은 사실상 그대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제조 3사뿐 아니다. 이통 3사도 고착화된 구조다. 신규 경쟁자가 나타나기 어려운 구조에서 완전자급제 도입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있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정의센터 국장은 “단말기 완전자급제로 소비자 선택권을 늘리겠다고 하지만 판매장려금 감소가 실질적으로 통신비 인하로 연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유통구조 양극화도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완전자급제가 시행되면 중소 판매점이나 대리점은 사실상 설 자리를 잃는다. 이를 대신해 대형 유통점이나 통신 자회사가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대량 실업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완전자급제를 시행하면 이통 3사는 당장 마케팅 비용을 줄일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수만 개 이상 이통사 대리점이나 40여개 알뜰폰 업체가 사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기적 관점에서 제4의 이동통신같이 새로운 사업자가 들어와 경쟁이 이뤄진 이후 완전자급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용구 통신조합 상임이사는 “완전자급제 도입은 고착화된 이통 3사와 일부 제조사가 독점하는 구조에서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며 “현재 구조에서 완전자급제를 도입하면 통신과 제조 모두 신규 사업자 진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잠깐용어 *단말기 완전자급제 단말기 구입과 통신요금 가입을 분리하는 제도. 이용자는 스마트폰을 온오프라인 판매점에서 구입한 뒤 통신사 대리점에서 요금제에 가입할 수 있다. 지금과 달리 통신사 대리점이 단말기를 팔 수 없는 제도다.